우리별 1호가 발사된 지 22년이 되었다. 동건씨가 알려주어서 알았지만.......이제 스물두 살인 건가...

내 스물두 살을 생각해 보면 역시.....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땐 그때대로 힘들었다.

그런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힘들었던 이유가 잘 생각이 안난다.

축하한다. 스물 둘.

일호는 이상한 고민에 빠지지 말고 친구들과 어울려 클럽이나 다니며 실컷 놀았으면 좋겠다.

어떤 시절 / 유희경

 

어떤 시절 꽃잎이 떨어진다.

저리 짙은 붉음을 본적이 있는지,

속으로 생각해보지만,

생의 눈빛을 붉게 물들이던 낱말이 떠올라,

더는 아무런 계산도 하지 않는다.

나는 목이 마르다. 언제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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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형윤

별을 쫓는 아이 (신카이 마코토,2011)

<별을 쫓는 아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으로 2011년 개봉하였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1999)와 <별의 목소리>(2002)로 일약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해성같이 나타난 신인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마치 사진과 같은 아름다운 배경 미술과 1인 제작 시스템으로 만든 상업회사의 작품을 상회하는 퀼리티가 그 주목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첫 장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에 이어 <초속 5센티미터>(2007) 그리고 이번의 <별을 쫓는 아이>(2011)까지 3번째 장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여러 면에서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과는 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애니메이션 회사 출신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많은 애니메이션 감독과 다르게 애니메이터 출신이 아니다. 그렇다고 픽사나 디즈니 감독들처럼 애니메이션 학과를 나온 전공자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세계와 인터뷰를 살펴보면 그의 작품은 두 가지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감수성과 일치하는 내성적이고 성찰적인 소년의 정서이다. 두 번째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은 SF의 세계관이다. 첫 단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게임회사에서 틈틈이 만든 작품으로 온전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성찰적인 감성과 연애에 대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일본의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DOGA CG애니메이션 페스티발에서 그랑프리를 받으며 일약 가능성 있는 신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만든 <별의 목소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감성의 두 원류인 내성적인 소년의 시각으로 본 풋풋한 사춘기의 연애 감정 그리고 또 하나인 SF가 25분의 러닝타임에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DVD만 16만장이 팔리면서 자신의 상업성을 입증하였다. 제작비가 2000만원이 든 것을 감안하면 이 작품은 엄청난 히트상품이다. 또 그는 이 작품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첫 장편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는 SF세계관이 그의 장점이던 성찰과 예민한 감수성을 잡아먹어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좋은 성과를 보여 왔던 작품의 두 원천이 충돌을 보인 것이다. SF가 작품의 뼈대라면 성찰적인 연애감정은 심장이다. SF는 액션을 만들지만 영화의 감정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시 <초속 5센티미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하나의 목적에만 집중하여 그 감성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다. 큰 스토리가 감성을 방해하지 않도록 옴니버스로 구성하였으며 자신의 또 다른 취향인 SF를 배제하였다. 결국 <초속 5센티미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소기의 목적이란 신카이 마코토 색깔의 장편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연달아 만든 작품을 피로를 없애기 위해 영국으로 가서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1년 뒤 그는 새로운 작품의 기획안을 들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물론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창작자를 존중해 주는 제작사 코믹스 웨이브 필름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이번에는 완전한 SF중심의 모험물을 가져온 것이다. 결과는 화면의 완성도는 합격. 내용은 아직 불합격이다. 그는 이 소녀의 모험영화를 위해서 지브리와 비슷하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캐릭터와 미술을 지브리에 가까운 스타일로 만들었으며 여러 가지의 신기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켰다. 부지런하며 의지가 강한 소녀도 나오고 귀여운 애완동물도 나온다. 그리고 아가르타라고 불리우는 지하세계는 중세와 티베트를 합쳐놓은 것처럼 다른 영화와 겹치지 않는 판타지 세계로 만들었다.

요소는 다 있었다. 하지만 요소만으로는 마법이 발동하지 않았다. 뭔가 중요한 주문이 빠져 있는 것 같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과도한 음악사용? 공감이 가지 않는 주인공과 설명적인 스토리 전개가 문제일까? 나는 신카이 마코토가 분명 <천공의 성 라퓨타>와 같은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요소들은 다 있는데 왜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마법이 발동하지 않은 걸까? <천공의 성 라퓨타>와 <별을 쫓는 아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귀여움과 유머의 결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도 분명 SF의 어두운 세계지만 거기에는 귀여움이 묻어나는 캐릭터들의 작은 유머가 잔뜩 있다. 그것이 영화의 숨통을 열어준다. 하지만 <별을 쫓는 아이>에서는 관객들이 숨 쉴 틈이 없다. 영화는 시종일관 답답하다. 이것이 작지만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것이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관객들이 바라는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공각기동대>를 만들려고 했다면 또 다른 이야기 이다. 완전히 다른 지향점을 가진 영화에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영화를 비판 하는 건 쉽지만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나는 신카이 마코토의 이러한 시도가 지극히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초속 5센티미터>는 신카이 마코토의 기존 스타일의 최고 퀄리티이다. 하지만 젊은 감독이 계속 같은 감성을 반복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좀 더 넓은 세계로 가서 많은 관객을 만나야만 한다. 별의 목소리의 대사를 빌리자면 ‘혼자서라도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 글: 장형윤(애니메이션 감독)

 

여담. 신카이 마코토와는 일본 배급사가(코믹스 웨이브) 같아서 여러 번 만나 보았습니다. 새 작품에 들어 가고 있다네요.

그 동안 결혼도 하고 (절대 안할 분위기였는데-_-;) 아이도 생겼답니다. 2년만에 엄청난 변화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

코믹스 웨이브의 대표인 가와구치 상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프로듀서 쓰나미상

Posted by 장형윤

 

 

 

트란안 홍의 상실의 시대를 보았다. 예고 편을 보며 이미 소설과 비슷할 거라는 기대는 접었지만, 그렇게 잘 생긴 와타나베라니.....나의 레이는 그렇지 않아!

 

 

 

이게 와타나베. 어디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책만 읽게 생겼냐구!

 

편견일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평범해야 한다. 평범하면서도 매력 있는. 그렇게 긴 속눈섭의 조각 미남이라니. 게다고 옷이 더 문제. 완벽한 댄디 보이! 당연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젊은 모습 같은 것을 기대했건만.....

 

 

나는 이런 걸 원했다오. 요기서 약간 잘생기게 변주 정도랄까..........

 

게다가 미도리...........

 

 

 

 미도리만은.......소설을 보면 알겠지만 미도리는 홧김에 밀어버린 아주짧은 머리. 병아리 같은 이미지.

 

 

 

사실 소설의 미도리는 거의 이런 이미지다. 중경삼림에 왕정문 같은.

 

결과적으로 영화는 일본어 더빙이 된 베트남 영화같다. 가옥 구조라든지, 거리가 나오지 않는 도쿄라든지.

모든 배우가 일본 배우 임에도 그런 느낌이 난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소설로 막연하게 나마 시대의 공기 같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영화에는 68년의 도쿄는 없다. 아무리 봐도 베트남이나 대만 그런 곳으 느낌.

 

 

 

 

 

 

그래도 이야기 전개는 소설과 같아서 한참 상실의 시대를 읽던 대학때가 생각나서 좋았다.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때도 불행하기는 했지만 왠지 미래에 내가 멋진 사람이 될 것 같은 희망이 있어서 좋았었는데.

 

지나간 사랑의 아련한 느낌과 다가올 사랑의 막연한 기대같은 것이 있어서 좋았는데.

 

쳇. 이렇게 어른이 되어 간다........


Posted by 장형윤
또 일요일이 돌아왔고 햇볕은 너무 좋고 작업실에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작은 만족감이 생긴다.

스트레스. 스트레스.
시나리오를 이렇게 오래 하다 보면 오래해서 생기는 혼란이 있다. 좋은지 나쁜지도 전혀 모르게 되고 이걸 고치면 저게 문제가 생기고 그런 반복이 계속된다.

그리고 잘하고는 싶은데 나는 잘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닐까라는 비관적인 지점까지 생각이 진행될 때가 있다. 그러니까 사실 뭐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오래된 물음이 다시 수면위로 오르는 것이다.


예전에는 작업실만 있다면 언제까지이고 작업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차고던 지하던 작업실만 있다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공간이 있다면 어떻게든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처음 애니메이션을 시작 할 때의 막막함에 비하면 확실히 지금은 훨씬 나은 편이랄까.
하지만 사람은 예전일 같은 건 금방 잊어 버리게 된다. 지금은 전세로 정원이 있는 작업실이 가지고 싶어 졌고, 경제적인 여유도 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막상 작업은 별로 안하면서.

잘 하고 싶은데 잘 할 수 없어서 생기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건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은 매일 매일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일을 반복해 나가면서 인생을 낭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어떤 변병도 스스로에게 하지 못하고 '나는 그 때 용기가 없었구나'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적어도 애니메이션은 잘하고 싶긴 하니까, 분명 은행원이나 기자, 의사, 공무원 등등은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카드 가입율을 500%로 성장시킨다든지, 혁신적인 심장수술 기술을 세계최초로 계발하다든지, 창의적인 시정으로 글로벌 서울을 만들고 싶다든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의미 부여가 안되고 '그게 뭐야. 시시해'가 되어버렸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애니메이션 말고는 하고 싶은 것이 없다. 밴드 같은 것은 조끔 땡기기는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나이가 들어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작품을 만들 수 있으니까 좋은 점이 있다.

역시 과거를 돌아봐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그래. 그냥 애니메이션 계속 하자.
Posted by 장형윤


'지금이아니면안돼'가 제작하고 홍덕표가 연출한 실사 단편영화 <뜸> 촬영현장.
현재 편집 중인데 결과는 전혀 예상할 수 없음 ㅋㅋ
최후의 보루는 로토스코핑? ㅋㅋ

애니메이션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은 우리 스튜디오의 행보, 앞으로도 쭈욱 될겁니다.

제작 지금이 아니면 안돼
시나료/연출 홍덕표
프로듀서 장형윤
주연 박민영, 유정호
촬영감독 이성중,
조연출 홍문표,
연출부 동우, 태근, 하나,
스크립터 용준이를 포함한 많은 분들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지금이
 

뽀야와 지우개 연인


남들이 어떻게 하건 자기는 자신만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장편은 자본에 요구에 굴복 할 수밖에 없고 단편이라도 상을 받는 작품을 보면 부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잘 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또 다른 건 모르겠다는 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을 좋아한다. 막상 나 자신은 잘 그렇게 안 되지만 말이다.


‘솔직하게 나의 취향을 알려 주마’라고 말하는 것 같은 두 편의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 싶다. 첫째는 뽀야,




뽀야를 처음 본 것 인디애니페스트라는 영화제였는데 처음에는 대충 만든 듯 한 애니메이션과 유치한 내용에 ‘뻔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봤지만 보는 중간부터는 푹 빠져 들고 말았다.


뽀야는 사춘기에 접어든 토끼소녀이다. 밝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혼자 자취를 하며 취미는 쇼핑과 게임. 그리고 친구들과 노는 것이 전부인 인생을 살고 있다. 이런 뽀야 앞에 초식동물 차별주의자인 페르시안 고양이 르페가 나타난다.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그냥 ‘토끼야’라고 부르는 루페 때문에 고민하는 뽀야.


한편 뽀야의 단짝 친구 고양이 ‘얌차’는 엄마 없이 동생을 돌보며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남자 친구가 생기게 되면서 동생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는 르페와의 관계.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단짝친구인 얌차의 임신 사실을 알고 뽀야는 두 배의 충격을 받고 만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동화, 대충 그린 배경.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친구와의 갈등, 가족의 문제, 이성간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춘기 소녀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또 토끼와 고양이가 주인공인 동화적인 측면에서 ‘남자 친구와 관계에서 임신하게 된 친구’라는 현실적인 면까지를 두루 갖춘 성장영화이다. 그리고 주인공 뽀야가 가진 순수하면서 밝은 에너지는 보는 사람을 결국은 미소 짓게 만든다.


작화에서 배경작업 성우 녹음, 심지어 마지막에 나오는 주제가 작사 작곡까지 모든 역할을 해낸 최도영 감독은 특히 성우 쪽에는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것 같다. 혼자서 5-6명을 연기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고 모든 캐릭터를 살리고 있다.




이 작품은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의 지원을 받아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파일럿 1화 분량이 제작 되고 있는데 TV시리즈로 방송으로 볼 수 있다면 분명 재미있을 것 같다.


두 번째 작품은 지우개 연인


이 작품은 원래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인 박지연 감독이 만든 단편인데 박지연 감독은 원래 EBS에서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레카’와 ‘흑장미 부인의 문방구’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작가이다. 사실 그녀는 그 전에 한 번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본적이 없다.


이 작품은 문화센터 워크숍에서 만들어진 작품인데 그 워크숍의 담당 강사는 나였다.

그녀는 ‘버리는 것은 없다’ 방식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그녀는 내가 ‘작화는 이런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라고 테스트로 그려 준 컷 까지 모두 화면에 넣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은 친구, 후배 그리고 엄마와 자신의 중학교 제자들까지 한 장씩 그리게 해서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품은 종종 채색이 덜된 부분이 보이고 심지어는 화면의 픽셀이 깨진 부분도 있다. 감독이 포토샵을 잘 모르는데다가 픽셀이 깨진 것도 괜찮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완성이 되고 나서 작품을 보니.........너무 재미있었다.


 두 연인이 대화하는 내용을 따라가는 애니메이션인데 두 사람의 대화는 옛날 방화에서 나오는 그것이다. 그러니까 ‘날 잡아 봐요~’해변에서 뛰어가는 두 남녀 분위기.

들장미 소녀 캔디 같은 분위기의 화면에 옛날 방화의 말투의 성우녹음의 간극이 큰 재미를 준다. 신선했다. 그리고 상영 할 때마다 관객들도 무척 좋아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러한 제작 방식과 완성된 작품이 주는 재미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만들면서 재미를 느끼고 어찌되었던 끝까지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작품.

마이클 두독 비트의 ‘아버지와 딸’도 훌륭하고 픽사의 단편들도 훌륭하고 앙시나 자그레브의 대상 작품들도 훌륭하지만 그것만 보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으면 왠지 올림픽 금메달을 따야하는 육상선수 같은 기분이 되어 버린다.


언제부터였을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많은 준비가 필요해 진 것이......... 이런 작품들을 보면 준비가 없어도 되며 즐겁게 연주하는 거리 공연 같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들이 엄숙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즐겁고, 만든 사람 스스로를 위로해 주기를 바란다.




Posted by 장형윤
도스또예 프스키 '악령'
그리고 알베르 카뮈의 '안과 밖'을 읽다.

고전을 읽는 것은 상당히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도스또예 프스키는 일단 반 정도를 읽기만 하면 절대 후회 하지 않게 된다.

스므살 쯤에 시지프의 신화를 읽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이방인도 좋았다.
그리고 카뮈의 스승 장 그리니에에 매력적인 책들.

나는 오래전부터 실존주의 철학에 깊은 감동을 느껴왔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개인의 존재와 고통, 결단 이런것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스므살의 일기에는 '인생은 고통의 바다 '라는 말이 적혀 있을 정도로 여러가지로 고통스러워 했으니까 개인의 존재나 실존의 의미 이런것에 관심이 많았다.

정작 카뮈 자신은 실존주의와 반대적인 입장이라고 하지만. 뭐 큰 틀에서의 관심은 비슷하니까.

그 이후의 현대 철학들은 예를 들면 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은 왠지 '아 그런 것인었나 이 세계라는 것은.........'이라고 이해해도 도무지 개인적으로는 힘이 나지 않는 것들이다.

세계가 영화 '매트릭스' 같은 개인은 빠져 나갈 수 없는 구조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면 그리고 주체나 개인은 사실은 아무런 선택이 없다고 한다면........우리는 어떻게 힘을 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조금은 낭만적이지만 실존주의가 좋다.


Posted by 장형윤

edding 1880

스튜디오 일상 2010.01.18 23:20

edding 1880 펜을 다섯 개 사고 새 연습장을 샀다.

처음 김준이 소개시켜 준 이후로 나는 8년 째 이 펜만 쓰고 있다.

남대문에 있는 알파 문구 본점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사실 홍대 호미 화방에도 팔고 있었다.


펜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쁜 습관이지만 그래도 이 펜을 사고 나니 마음이 안정 되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Posted by 장형윤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고흐의 작품을 만드는 태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분석적이며 노력에 의한 것이다.

결국 예술적 재능이라는 것은 그런 노력을 지속적으로 불태울 수 있는 열정이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요즘 도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만 있기 때문에

고흐의 편지의 어떤 부분을 읽다가 정신이 멍해 졌다.


나 자신이 고흐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정말 무엇인가가 되고 싶다. 쓸모있고 생산적인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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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중략)


그런데 또 다른 유형의 게으름 뱅이도 있단다.

어쩔 수 없이 게으름 뱅이가 된 사람,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엄청난 욕구에 시달리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야. 무언가를 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

무언가에 갇힌 듯한 이 사람에게는 생산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가 부족하단다.

불가피한 상황들이 그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거야.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는지 늘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지.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이렇게 느낀단다.

'그래도 난 무언가에 쓸모가 있으며, 나의 존재 이유를 느낄 수 있어!

내가 아주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 어떻게 하면 쓸모있는 사람이 될까?

무엇을 할 수 있지? 내 안에 무언가가 있는데, 대체 그게 뭘까?'

 

 

이런 사람은 전혀 다른 유형의 게으름 뱅이야. 나를 이들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해도 좋아.

 



 봄에 새장에 갇힌 새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함을 알고 있단다.

그런데 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느끼면서도 속수무책인거야.

그게 무얼까? 좀처럼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들은 있어.

"다른 새들은 둥지를 짓고 새끼를 낳아서 기르지."

그는 혼자 이렇게 말하며 새장의 창살에 머리를 부딪는단다.

하지만 새장은 그대로 있고, 새는 슬픔으로 미쳐버릴 것 만 같지.

 

"저 놈은 게으름 뱅이야." 라고, 지나가는 새가 내뱉는 단다.

"놀고 먹는 놈이지." 이런 말을 듣고도 새장에 갇힌 새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

건강은 양호하며 햇빛을 받으면 명랑한 기분에 젖기도 해.

그러다가 철새가 이동하는 계절이 오면 갑작스레 우울증이 찾아든단다.

 

"하지만 부족한게 없는 새잖아." 라고, 새장 속의 새를 돌보는 아이들은 말하지.

그렇지만 그는 폭풍우 가득 실은 하늘을 내다보며 내면에서 솟구치는 운명에 대해 저항을 느낄 따름이야.

"난 새장 안에 있다. 새장 안에 있어. 그러니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이 바보들아!

난 필요한 모든 걸 가졌어! 아, 제발 내게 자유를 다오. 다른 새들처럼 말이야."

 

 

게으른 그 남자는 이 게으른 새와 비슷해.

 

  

하지만 해방이, 궁극적인 해방이 있음을 잘 안단다.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더럽혀진 명성과 장애물, 주변상황, 불운, 이 모두가 사람을 죄수로 만들지.

무엇이 우리를 유폐하고 산 채로 매장하는지 늘 알 수 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창살이나 새장, 벽의 존재를 느낄 수는 있단다.

 

이 모두가 상상이며 환상일까? 그렇지는 않을거야.

나 자신에게 물어본단다. 맙소사, 이런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까? 영원히 계속될까?

 

 

이 감옥을 사라지게 하는 건 뭘까? 그건 바로 사랑이야.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한다면, 그 숭고한 힘과 강력한 마력으로 감옥의 문을 열 수 있겠지.

그런게 없는 사람은 생명을 잃은 채 살아가는 거야.

 

연민이 새롭게 태어나는 곳에 삶이 다시 피어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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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고흐의 글이다.


다른 새들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지.........

 

Posted by 장형윤
 

 


 

내 친한 친구와의 가벼운 친밀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공간감. 그리고 반짝이던 날들의 기억.


2009년 반짝이던 날들의 기억이 발표되면서 김준 감독의 세 편의 애니메이션이 마무리 되었다. 나는 이것을 공간 삼부작이라고 부르는데 말하자면 공간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라서 그렇다.


한국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초창기 1990년도에서 2000년도 초반까지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지닌 단편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것은 감독들이 80년대의 아이들로서, 첨예한 정치의 시대에 대학을 다니고 그 감수성을 작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개인의 감성을 중요시 하는 작품들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주인공의 감정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풀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김준의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흐름에서도 아주 특별한데, 바로 공간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상징적인 공간이 아닌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의 풍경들이다.


 

‘내 친한 친구와의 가벼운 친밀감’에서는 카페에서 친구와 앉아 있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도 카페의 풍경도 사라지며 선과 면의 주변으로 변해버린다.

내 친한 친구와의 가벼운 친밀감

내 친한 친구와의 가벼운 친밀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주인공을 둘러싼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갑자기 혼자가 되어 주변이 몽환적으로 변하는 그런 느낌이랑 비슷하다고 할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공간감’에서 카메라의 유려한 흐름은 왠지 꿈결 같다.

한장 한장 손으로 그려진 카메라 움직임를 통해서 우리는 아파트의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몽유병을 경험하는 것 같은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연필로 그려진 따듯한 흑백의 이미지는 너무나 매혹적이다. 3D로 만들어진 입체가 아니지만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공간감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공간감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공간감



내 친한 친구와의 가벼운 친밀감-카페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공간감-아파트

반짝이던 날들의 기억-거리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공간들은 감독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들이다.


반짝이던 날들의 기억
반짝이던 날들의 기억

한동안 나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유독 주변의 풍경에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안 그런 작품도 많이 있지만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환타지의 세계나 상상의 세계를 다루는 작품이 더 많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고 우리의 많은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첫 출발이 주변부터라는 것,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내안으로 걸어 들어가지만 그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의 작업들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방식이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일 수도 있지만 김준의 그 것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조심스럽게 공유하는 느낌이다.


김준은 조용하고 움직이는 이미지들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그곳에는 자연스럽게 동시대의 서울의 풍경과 도시와 사람들이 나타난다.


김준이 지금 만들고 있는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 조금 더 인물이 중심인 작품이라는데.......아마 올해 안에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미지 출처-한국독립애니메이션 협회 홈페이지 www.kiafa.org)
Posted by 장형윤